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세 음악/역사 (문단 편집) ==== 전례극 ==== [[중세]]의 종교극은 전례 성가로부터 시작되었다. 부속가와 마찬가지로 성가의 트로푸스를 거쳐 탄생된 전례극은 [[문맹]]이 많았던 중세 시대의 평신도들에게 교리와 [[성경]]을 좀 더 쉽게 이해시키려는 목적이었다. 교회에서는 축일날 [[예수 그리스도]]의 이야기나 [[구약성서]]의 장면들을 [[사제]]가 제단 앞에서 [[연극]]처럼 공연하는 전통이 있었지만, 단순히 높낮이만 적용한 대화를 하는 수준이었다. 점차점차 여기에 음악이 붙여졌으며 그에 맞게 의상들이나 무대장치도 갖춘 전례극으로 발전한다. 이런 전례극은 기적극, 신비극, 도덕극의 세 방향으로 나눠졌다. 기적극과 도덕극은 [[그리스도교]] [[성인(기독교)|성인]]들이나 [[성모 마리아]]의 생애에 조금 살을 붙여 그려내는 극이고 도덕극은 추상적으로 선과 악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룬 교훈극이다. 가장 최초의 전례극은 10세기의 것으로 예수부활 대축일 입당송 앞의 트로프이다. 이 중 생갈 필사본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러온 3명의 [[마리아]]와 [[천사]]들의 짤막한 대화 수준이었다. 전례극이라 할 만한 것은 영국의 [[베네딕토 수도회]]의 의식 소책자였다. 973년 간행된 이 책자에서는 차려입은 [[사제(성직자)|사제]] 4명이 각각 마리아와 천사를 연기하며 대화하는 것이었고 후에 테 데움이 붙었다. 이런 전례극이 점점 확대되고 복잡해졌다. 이후 가장 완전한 전례극은 12세기 [[프랑스]] 성 브누아 쉬르 루아르의 수도원에 있는 각본집이다. 이 각본집에는 여러가지 10개의 이야기가 실려있었다. 그후에도 13세기 초에 보베 성당 학교 학생들이 작곡한 '[[다니엘]] 이야기'는 [[그리스도]]에 대해 예언하는 다니엘을 묘사한 것으로써 50개가 넘는 선율, [[노래]]와 [[춤]], 행렬,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. 이러한 구경거리들이 붙으면서 전례극은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고 넓은 광장이나 [[교회]] 밖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상연하였다. 초반에는 사제들이 [[라틴어]]를 사용하며 연기했지만 점차 대중적으로 기악음악이 붙고 일반인들도 참여가 가능하면서, 목소리가 음역별로 분류되거나 당시 지역의 언어를 사용하였다. 여기에 점점 민속적, 세속적인 요소가 침투하며 본래의 의도에서 변질되자 1210년 [[교황]]은 [[성직자]]의 무대연기를 금하기도 했다. 이런식으로 가면서 전례극은 점점 세속적인 연극으로 독립하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